저게 학교 맞아? 그리고 저들이 우리가 봐왔던 선생님이 맞아? 요즘 학원물을 보다 보면 드는 생각이다. 과거 학원물이 그리는 교실은 지식을 전달하고 인격을 도야하는 신성한 공간이었고, 교사는 엇나가는 학생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영혼의 멘토'였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교실은 더 이상 낭만적인 배움의 터전이 아니다. 고도로 지능화된 학교폭력, 학부모의 끝없는 악성 민원, 일상화된 교권 침해 그리고 입시 위주의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전쟁터가 됐다. 이러한 학교의 변화는 학원물에서 대중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교사상에도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과거의 교사 캐릭터가 제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묻고 자아실현을 가르치는 역할에 집중했다면, 현재의 교사 캐릭터는 외부의 물리적, 제도적 위협으로부터 학생과 교실을 보호하는 방패이자, 때로는 무너진 질서를 바로잡는 심판자의 역할로 진화하고 있다.
영혼의 멘토였던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선생님
억압을 깨고 주체적 자아를 일깨운 낭만의 교사들
1989년 개봉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 선생님(로빈 윌리엄스)은 한국 사회에서도 대중들이 기억하는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낭만적인 교사상의 원형이다. 지식을 주입하는 것을 넘어서 학생들의 억압된 내면을 해방시키고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영혼의 멘토'였던 키팅 선생님은, 치열한 입시 교육 속에서 억압됐던 당대의 한국 학생들의 마음에도 큰 울림을 줬다. 키팅 선생님이 부임한 웰튼 아카데미는 '전통, 명예, 훈육, 탁월함'이라는 억압적인 규율 아래 학생들을 기계 부품처럼 길러내던 곳이었다. 하지만 키팅은 교과서의 서문을 찢어버리게 하고, 교탁 위에 올라가 익숙한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것을 주문하며, 학생들에게 획일적인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으라고 가르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키팅 선생님은 그렇게 외치며 정해진 성공의 궤도 안에서 질식해 가는 학생들에게 주체적인 자아를 되찾으라고 강변한다.

키팅 선생님이 고전적인 참스승의 원형을 보여준다면, 《스쿨 오브 락》의 듀이 핀(잭 블랙)은 기존의 교사상에서 벗어나 친구처럼 제자들에게 다가가는 '괴짜형 교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친구 이름을 도용해 취업한 가짜 보조교사였지만, 록이라는 음악을 매개로 아이들의 잠재성을 폭발시키는 이 새로운 스승은 교사가 제도 바깥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학생들의 생기를 되찾아주는 낭만을 그려낸다. 이러한 기존의 교사상을 깨는 캐릭터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일본 학원물에도 등장했다. 《GTO(Great Teacher Onizuka)》의 오니즈카 에이키치와 《고쿠센》의 야마구치 쿠미코(양쿠미)가 그들이다. 이들은 기존 교육자와는 거리가 먼 '전직 폭주족' 혹은 '야쿠자 후계자'라는 파격적인 배경을 가진 인물들로 기성세대의 위선에 상처받아 어른을 혐오하게 된 불량학생들에게 '든든한 그들의 편'을 자처하며 다가간다. 아직은 낭만이 허용되던 시절, '영혼의 멘토'가 되던 교사들의 모습이다.
생존의 위협을 받는 학생들의 방패가 된 교사들
가르침이 아니라 생존을 지켜내는 인간 방패로
글로벌 OTT의 시대가 열리면서 늘어난 판타지 장르물 속에서 학원물도 변화를 거듭하기 시작한다. 학생들을 짓누르는 억압이나 스트레스를 욕망의 잔여물인 '젤리'로 형상화해 학교를 위협하는 괴물로 그려내고 이를 볼 수 있는 초능력자 교사의 대결을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이 대표적인 사례다. 학생들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 비대해진 젤리 괴물 앞에서 학생들을 지켜내기 위해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을 들고 학교 구석구석을 누비는 안은영(정유미)의 모습은 기이해 보이지만 실상 고립된 학교 공간에서 무방비하게 노출된 학생들의 정신과 생명을 좀먹는 괴물들과의 고독한 사투다. 여기서 교사의 역할은 정신적 가르침의 차원이 아니라 학생들의 생존을 지켜내는 '인간 방패'에 가깝다.
여기서 교사의 역할은 정신적 가르침의 차원이 아니라
학생들의 생존을 지켜내는 '인간 방패'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판타지화된 학원물 속에서 교사 역할의 극적 전환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디즈니+ 시리즈 《무빙》에 등장하는 정원고 체육교사 최일환(김희원)이다. 본래 특전사 출신의 국정원 블랙요원인 그는 초능력을 가진 십대들을 국가의 무기로 선별하기 위해 10년 넘게 위장 취업을 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상부의 지시로 불량학생들의 폭력을 방관하며 자괴감을 느꼈던 그는, 오래도록 제자들과 동고동락하며 점차 국가의 비정한 명령보다 교사로서의 책무를 우위에 두게 된다. 결국 그는 평범한 교사지만, 제자들을 노리는 북한 요원들과 국정원의 위협 앞에서 제자들의 방패가 되어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판타지 장르 속 극화된 교사들의 모습은 치열한 입시 경쟁 같은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 안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학생들의 방어자가 되어주는 교사 히어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붕괴된 교권, 무법지대의 심판자로 나선 교단의 히어로
방어를 넘어 가해자를 응징하는 심판자, 그리고 그 역설
앞선 교사들의 캐릭터들이 갖가지 위협으로부터 학생들을 방어하는 존재였다면, 최근 큰 인기와 더불어 사회적 의제까지 던진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간다. 방어의 차원이 아닌 가해자를 응징하고 교권을 침해하는 제도 자체를 깨는 '심판자'로서의 교단의 히어로다.
이 작품의 배경은 체벌 금지법과 학생인권조례의 맹점을 악용하는 불량 학생, 악성 민원을 일삼는 학부모, 촌지를 받는 부패 사학 재단으로 인해 교권이 완전히 무너진 가상의 대한민국이다. 나화진(김무열)은 무너진 교육을 바로잡기 위해 강력한 초법적 권한을 부여받은 '교권보호국'의 현장 감독관으로, 기존의 따뜻한 멘토링이나 수동적인 방어를 철저히 거부한다. 그가 취하고 있는 교육 원칙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즉 가해자가 저지른 악행을 고스란히 되돌려줌으로써 피해자가 겪는 고통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는 법의 사각지대에 숨어 더 지독한 범죄를 자행하는 촉법소년들이나 권력을 쥔 사학재단 이사장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다. 심지어 가해자에게 무자비한 사적 제재를 가하는 자경단의 형태까지 띠는 이 새로운 교사상은 논쟁적인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는 날로 급증하는 교권침해로 인해 생존의 위기에 놓인 교사들의 현실이 한몫을 차지했다. 2023년 한 해만 28명의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2024년 초등학교 종사자의 우울증 진료건수가 7만 건이 넘는 현실이 과도하게까지 그려진 논쟁적 캐릭터조차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교단의 히어로로 여겨지게 한 것이다.
이처럼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 같은 억압적인 체제 속에서 학생들의 숨통을 트여주는 낭만적인 교사상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대신 나화진 같은 교단의 히어로가 등장해 무법천지가 된 교실에서 가해자들을 '참교육'시키며 학생과 교사 자신의 생존을 지켜내려 한다. '영혼의 멘토'에서 '인간 방패'를 거쳐 '심판자'로 진화해 온 교사 캐릭터의 변천사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한국 교육 시스템의 아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이제 교사상이 과거 '군사부일체' 같은 의미의 권위로 회귀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 학생들과 친구처럼 동료처럼 수평적으로 소통하며 그들의 성장을 옆에서 돕는 조력자로서의 교사상이 현재에 더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둘러싼 교육 시스템 전반의 환경들이 변화해야 한다. 콘텐츠는 결국 그 변화를 촉구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한다. 콘텐츠에 투영된 이러한 교사상의 시대적 변화는 그래서 당대의 욕망이 똑같은 직업군에서조차 얼마나 새롭게 해석되고 변화할 수 있는가를 말해준다.

정덕현 Jung Deok-hyun
대중문화평론가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각종 방송 활동과 강연 등을 통해 대중문화가 가진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 있다.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저서로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