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주연인 작품이 티켓 판매 상위권을 다수 차지하는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여성 주인공의 창작 뮤지컬 《홍련》이 개막 19일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무대에 선 홍련은 '피해자'가 아니라 '살인자'로 자신을 소개한다. 죽어서야 말할 수 있었던 여성들은 이번에는 무엇을 말하고, 객석은 그 말에 어떻게 답하는가. 이 글은 전통 서사 속 홍련이 오늘의 무대에서 어떤 여성으로 다시 태어났는지 따라가 본다.
K-콘텐츠와 여성서사
대문자 K의 시대, 전통 서사에서 걸어 나온 여성 주체
한류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면서, 정부는 '한국적'인 콘텐츠를 적극 지원하고 콘텐츠 업계는 한류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이제는 K-드라마와 K-Pop을 넘어 콘텐츠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대문자 K가 과연 존재하는지, 여러 장르에 붙는 '한국'이라는 수식어가 사회문화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되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창작 뮤지컬 《홍련》(2024년 7월 개막)의 주인공 '홍련'에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은 2022년 CJ 문화재단과 2023년 K-뮤지컬 국제마켓 리딩 쇼케이스를 거쳐 개발되었으며, 한국 서사무가의 대표작 《바리데기》와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을 교차해 만든 이야기이다. 전통 서사를 오늘의 방식으로 다시 쓰는 일은 관객이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비춰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화 텍스트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바리데기》와 《장화홍련전》은 여성이 주체로 등장하는 텍스트이면서, 지금도 사회문화적 의미를 지닌 채 거듭 호출되고 있다. 이 전통 서사에서 걸어 나온 홍련은 새로운 맥락의 여성 주체로 다시 서서 대학로 관객들과 '현재'를 마주한다.
뮤지컬은 무대장치, 음악, 음향 등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며, 관객 역시 현장에서 공연에 '참여'한다. 이런 특성 덕분에 관객과 공연은 현재진행형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매 회차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 관객이 의미를 만들어 내는 폭도 넓어지고 달라질 수 있다. 공연은 관객의 적극적인 해석을 필요로 하고, 관객은 홍련의 재판을 지켜보는 동시에 그 서사의 빈 곳을 스스로 채워 가기 때문이다.
홍련, 현재로 소환되다
저승의 법정에 선 '살인자' 홍련, 한에서 분노로
홍련은 저승의 천도정에서 바리와 마주하며 무대에 처음 등장한다. 바리는 죽은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고, 이승에서의 삶을 심판하는 존재다. 저승사자 강림과 월직차사, 일직차사 등이 함께하는 재판에서 홍련은 1656년 평안도 철산에서 일어난 존속 살해 사건의 피고인으로 등장한다. 강림은 관객을 이 재판의 '참관인'으로 초대하고, 홍련은 자신을 아버지를 죽이고 동생을 해친 '살인자'라고 소개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전 《장화홍련전》과는 전혀 다른 출발이다.

원작 《장화홍련전》에서 홍련은 언니 장화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인물이다. 그는 가부장적 가족 질서 속에서 희생당한 자매의 비극을 보여주는 존재인 셈이다. 그러나 무대 위의 홍련은 이 익숙한 모습을 스스로 뒤집는다. 홍련은 자신이 '아버지의 목을 따고 동생의 팔다리를 작살낸' 살인자라고 선언한다.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대신, 자신이 저지른 폭력을 당당하게 입에 올리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홍련이 자신의 분노를 직접 표현하고, 그 분노의 원인을 자신을 억압해 온 가족과 아버지에게 돌린다는 점이다. 원작의 홍련이 죽음을 통해 억울함을 알리는 인물이었다면, 뮤지컬의 홍련은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는 억울하게 죽은 여성의 '한'이 가부장적 질서를 향한 적극적인 '분노'로 바뀐 것을 의미한다. 특히 홍련이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대상이 '아버지'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전통적인 가족 질서에서 아버지는 단순한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권위와 복종을 요구하는 가부장제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홍련의 친부 살해는 자신을 억압해 온 질서를 직접 파괴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홍련은 자신을 희생자로 만든 세계를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분노하고 저항하는 여성으로 다시 태어난다.
거짓 기억, 그리고 여성들의 연대
반전이 드러낸 불완전한 여성, 바리와 함께 선 굿판
그러나 홍련의 이야기는 단순한 복수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극이 진행되면서 홍련이 고백한 살인의 기억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홍련 스스로 만들어 낸 거짓된 기억이었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홍련은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언니 장화가 죽음으로 내몰리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도망친 인물이었다. 자신을 살인자라고 소개했던 홍련의 모습은 사실 자신이 하지 못했던 행동, 어쩌면 가장 하고 싶었던 행동을 상상 속에서 실현한 결과였던 셈이다.
이러한 반전은 홍련이라는 인물을 더욱 복잡하고 흥미롭게 만든다. 홍련은 자신을 억압한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 만큼 분노했지만, 현실에서는 그 질서에 맞서지 못했다. 결국 자신을 '비겁한 목격자'이자 언니를 외면한 또 다른 가해자로 받아들인다. 이때 홍련이 만들어 낸 살인의 기억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언니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자신을 억압하는 세계를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뒤섞인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여성 인물로서 홍련이 지닌 의미가 드러난다. 홍련은 분노하지만 행동하지 못하고, 저항을 꿈꾸지만 결국 도망치고,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홍련은 완벽한 저항의 주체라기보다, 저항하고 싶었으나 저항할 수 없었던 여성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오히려 이러한 모순과 불완전함이 홍련을 오늘날의 관객에게 더욱 가까운 인물로 만든다.
홍련은 완벽한 저항의 주체라기보다,
저항하고 싶었으나 저항할 수 없었던 여성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홍련의 재판을 지켜보는 또 다른 여성, 바리의 존재도 중요하다. 한국의 전통 신화 《바리무가》에서 바리는 딸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인물이다. 홍련과 바리는 서로 다른 이야기에 속하지만, 가부장적 가족 질서 속에서 상처받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바리는 홍련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겪었던 고통과 마주하고, 홍련의 분노와 죄책감을 이해하게 된다. 재판관으로서 홍련의 죄를 판단해야 하는 바리가 점차 홍련의 고통에 공감하는 존재로 변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홍련은 심판받는 피고인에서 이해받고 연대하는 존재로 나아간다. 마지막에 펼쳐지는 굿판은 이러한 변화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 굿은 오랫동안 미신으로 취급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한을 풀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의식이기도 했다. 굿판 위에서 홍련의 고통은 더 이상 개인의 죄책감으로만 남지 않는다. 그 고통은 홍련과 바리, 그리고 객석의 관객들이 함께 슬픔을 나누고 위로받는 장면으로 확장된다.
무엇보다 굿판을 이끌고 그 위로에 참여하는 주체가 홍련과 바리, 곧 여성들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원작 《장화홍련전》에서 여성의 억울함은 죽음 이후에야 세상에 알려지고, 그 진실을 바로잡는 일은 외부의 권위에 의존한다. 반면 홍련은 바리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와 상처를 이해하며, 함께 슬픔을 풀어낸다. 이는 여성의 고통을 누군가 대신 해결해 주는 이야기에서 벗어나, 여성들이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이야기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씻김굿의 현재적 의미
상처 입은 여성들에게 건네는 위안과 연대의 씻김굿
홍련이 바리와 함께 벌이는 굿판은 기존 여성 서사가 안고 있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적 질서를 폭로하고, 그로 인해 상처 입은 여성들에게 위안과 연대를 건네는 커다란 "씻김굿"이 된다는 점에서 현재적 의미가 있다. 홍련의 여정은 "'넋을 부르는 단계', '음악과 춤으로 넋을 달래며 혼백의 말을 듣는 단계', '바리가 직접 혼백과 소통하며 한을 풀기 위해 돕는 단계', 마지막으로 '혼백의 한을 씻고 천도의 길로 안내하는 단계'(스포츠W, 2024/10/7)", 즉 씻김굿의 네 단계를 따라간다. 이러한 공간과 음악의 연출 속에서 관객은 한이 풀릴 때까지 신명 나게 어우러져 노는 굿판, 곧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되어 주고받는 굿판 그 자체를 함께 겪게 된다.

한국 사회에 오랫동안 이어져 온 불평등과 차별의 이야기가 계속 무대에 오르고, 그것이 '여성 서사'라고 불리는 것은 여전히 여성이 보편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 서사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여성 서사는 더 이상 '여성' 서사가 아니게 되는 것을 존재의 이유로 삼는지도 모른다.
- 1임가을 (2024). “뮤지컬 ‘홍련’ 배시현 작가 : 지금의 결말로 이끌어 준 배우들에 감사해요” https://m.swtvnews.com/news/amp.html?ncode=1065593639124617
- 2예술경영지원센터 (2024). 《2024년 상반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
- 3MARTIN ENTERTAINMENT (2024). 뮤지컬 《홍련》 대본집.

장민지 Jang Min-ji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부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선임연구원과 KBS경남 시청자 위원을 역임했으며, 웹소설을 연재하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다채로운 활동을 펼쳤다. 게임, 웹소설, 웹툰, 드라마, 오디션 프로그램 등 다양한 콘텐츠에 대해 젠더의 관점에서 논문을 쓰고,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2021), 《만화웹툰작가평론선 원수연》(2019), 《섹슈얼리티와 퀴어》(2016)라는 제목의 단독 저서를 집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