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안무저작권의 기준이 대체 무엇입니까?”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확장을 하며 안무의 가치가 나날이 커지는 케이팝(K-Pop) 산업에서, 댄서와 안무가들이 무대의 전면에 나서는 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 현장과 학계에서 끊임없이 맴도는 질문이다. 해당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놓기란 쉽지 않다. 안무저작권에 대한 기준 자체가 모호할뿐더러,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적 잣대가 낡았기 때문이다.
현재 안무의 저작물성을 긍정한 유일한 판례는 2012년 선고된 ‘샤이보이 판례’ 에 머물러 있다. 이 판례만이 음원의 ‘완곡’에 대한 안무의 저작권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이 유일한 기준이 안무저작권의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단법인 한국안무저작권협회가 설립되고, 국정감사에서 창작자 보호가 논의되며, 표준계약서 제정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안무가들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호받는 것이 현실이 되는 것은 여전히 먼 미래의 일 같다.
이러한 현실을 단순히 ‘명확한 판례의 부재’로만 돌리기에는, 안무가들이 처한 현실의 장벽이 높고 견고하다. 법적 기준의 모호함 이면에는, 창작자의 권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불공정한 계약 관행’과 ‘명확한 권력관계’ 라는 더욱 큰 구조적 모순이 있다.
안무가들의 목소리가 음소거 상태인 ‘기울어진 운동장’
권리 보호의 실태
현재 엔터테인먼트 산업 내에서 안무가와 연예기획사 간에 맺어지는 계약은 대부분 창작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계약이 아닌, 일회성 노무를 제공하는 용역 계약 의 형태를 띤다.
안무가가 통상적으로 체결하는 용역 계약서의 조항을 들여다보면 참담한 수준이다. 안무가는 저작물이 공표될 때 자신의 성명을 표시하도록 하는 성명표시권을 포함한 저작인격권 일체를 행사하지 않겠다는 조항 과 동시에 저작재산권 전부를 연예기획사에 영구적으로 귀속시킨다는 조항 에 서명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안무가들이 이러한 부당함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거대 자본과 시스템을 쥐고 있는 연예기획사와, 프리랜서 신분으로 다음 프로젝트에 참여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안무가 사이의 권력관계는 지나치게 비대칭적 이다. “이 조건에 동의하지 않으면 다른 안무가를 쓰겠다”는 암묵적인 압박 속에서, 안무가들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서명란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서명할 수밖에 없다. 저작권의 기준을 논하기 이전에, 계약서라는 첫 관문에서부터 창작자의 모든 권리가 법적으로 증발해 버리는 것이다.
판례의 덫: ‘완곡’과 숏폼 시대의 충돌
이러한 계약이 여전히 지배적일 수 있는 이유 중 앞서 언급한 ‘10년 전 판례의 덫’ 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 현행 실무는 여전히 샤이보이 판례의 ‘완곡’ 기준에 갇혀 있다. 이에 따라 저작권의 개념은 현재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 15초에서 30초 내외의 숏폼(short-form) 챌린지와 강렬한 ‘포인트 안무’에 적용하기조차 애매하게 느껴진다.
대중은 더 이상 안무를 완곡 단위로 소비하지 않는다. 잘게 쪼개지고 재가공된 안무의 파편들이 틱톡과 릴스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이 짧은 안무가 음원의 사업적 성과를 결정짓는 막대한 경제적 부가가치 를 창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인트 안무의 독창성을 어떻게 정량화하고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현대화된 법적 가이드라인이 부재 하다. 안무저작권과 관련하여 더욱 모호해지는 기준점에 대해 우리는 더욱 포괄적으로, 더욱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할 시간이 되었다.
기준을 기다리는 자에서, 기준을 창조하는 자로
안무가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모호한 법적 기준이 완벽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실물 시장의 논리를 재편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인격을 방어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창작물이 시장에서 합리적으로 유통되어 지속 가능한 산업적 가치를 창출하도록 돕는 경제적 도구 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까지 “안무저작권의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 정답을 현장이 아닌 과거의 판례 속에서 찾으려 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새로운 시대의 예술과 비즈니스를 담아낼 기준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안무의 창작적 가치를 정당한 비즈니스적 가치로 치환하는 합리적인 안무저작권 생태계라는 ‘새로운 기준’을 우리 스스로 써 내려가야 할 때다.
- 1서울고등법원 2012. 10. 24. 선고 2011나104668 판결(‘샤이보이 판례’).
- 2오경진. “한국안무저작권협회 출범… ‘K댄스의 무궁한 가능성 확장’”. 서울신문. https://www.seoul.co.kr/news/life/culture-news/2024/04/25/20240425500139
- 3이태수·최주성. “SM·YG·JYP 대표들 ‘안무 저작권 제도 마련되면 따를 것’”.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41007123300005
- 4서병기. “안무단체, 안무창작자의 저작인격권 포기 등 불합리 관행 개선을 위한 표준계약서 필요성 제기”. 헤럴드경제. “최근까지도 안무의 저작인격권을 포함한 일체의 권리가 발주자에게 영구히 귀속된다는 등 법적으로 불합리한 조항이 계약서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382343
- 5김정훈. “‘우리도 저작권료 받고 싶어요’…K-POP 안무가들의 고민 [백세희의 컬처&로(LAW)]”. 이코노미스트. https://economist.co.kr/article/view/ecn202504210072
- 6오주현. “‘K팝 댄스 챌린지’ 열풍…‘전세계적으로 핫하죠’”. 연합뉴스.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을 올리는 ‘숏폼’이 인기를 끌면서, ‘K팝 댄스 챌린지’는 이제 신곡을 내놓는 가수들의 필수 홍보 수단이 됐[다]”. https://www.yna.co.kr/view/MYH20231003002000641
- 7저작권법 제1조에 따르면,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송정현 Song Jeong-hyun
사단법인 한국안무저작권협회 간사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정보문화학(학사)을 전공하고 법학 지식재산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406k'와 '팀세임'을 거친 실력파 댄서이다. 현재는 한국안무저작권협회 간사로서 법적 전문성과 댄서로서의 실무 경험을 모두 갖춘 독보적인 커리어를 구축하며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