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4 · JUNE 2026 한국방송실연자권리협회 웹진
OTT 플랫폼(넷플릭스·디즈니+·애플 TV+·웨이브·티빙) 로고가 겹쳐진 신문 TV 편성표 — 편성표가 사라지는 시대를 상징한다
insight · 플랫폼 리포트
OTT가 바꾼 풍경

편성표가
사라진 자리.

리모컨을 버린 시대, 보상의 문법이 다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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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visible Order of the Schedule

편성표라는 보이지 않는 질서

신문에서 조용히 사라진 시간표

2026년 6월, 경향신문은 지면에서 TV 편성표를 제외했다. 미디어 소비가 다변화했다는 이유였다. 수십 년간 신문에서 가장 열독률이 높던 콘텐츠가 조용히 자리를 비운 것이다. 앞서 미국 뉴욕타임스도 2020년 ‘이제는 스트리밍의 시대’라며 81년 만에 지면 편성표를 없앴다.

한때 편성표는 단순한 시간표가 아니라 방송 산업의 설계도였다. 방송사가 언제 무엇을 내보낼지 정하면 시청자의 하루가 그 칸에 맞춰 흘렀고, 광고주는 그 시간대의 시청률을 샀다. 1995년 드라마 ‘모래시계’가 방영되던 시간에 직장인들이 서둘러 집으로 향해 ‘귀가시계’라는 말이 생겼을 만큼, 편성표는 시간의 질서이자 곧 돈의 질서였다. 실연자들의 출연 기회와 보수도 그 시간표 안에서 분배됐다.

January 2016, A Small Crack

2016년 1월, 작은 균열

‘무엇을’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넷플릭스가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2016년 1월, 처음에는 큰 사건처럼 보이지 않았다. 볼 만한 콘텐츠도 가입자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진짜 변화는 작품 목록이 아니라 시청자의 손끝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이 ‘무엇을 보느냐’보다 ‘언제, 어디서 보느냐’를 스스로 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2025년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를 보면 국민 10명 중 8명이 OTT를 이용하고, 유료 이용률도 65.5퍼센트까지 올랐다. 스마트폰으로 보던 시청은 줄고 거실의 TV 화면으로 OTT를 켜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2019년 웨이브가 출범하고 티빙이 가세하면서 시청 권력은 방송사 편성실에서 시청자의 결정으로 옮겨 갔다. 분수령은 2021년 ‘오징어 게임’이었다. 한국에서 만든 이야기가 전 세계에 같은 날 닿으면서, 어느 채널 몇 시 편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의미를 잃기 시작했다.

The Industry's Shifting Framework

흔들리는 산업의 뼈대

광고는 빠져나가고, 제작비는 치솟고

TV 권력이 약해지자 ‘방송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생태계’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본방송 시청률이 내려가면서 광고 수익 모델이 힘을 잃었고, 광고비는 검색과 영상 플랫폼으로 옮겨 갔다. 반면 제작비는 글로벌 자본이 들어오며 가파르게 올랐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추산으로 해외 OTT가 발주한 예능의 회당 제작비는 평균 8억 원으로, 지상파 평균(3억 5천만 원)의 두 배를 넘는다.

편성표가 사라진다는 것은 방송사가 시간을 통제하던 권력을 잃었다는 뜻이다. 콘텐츠는 이제 정해진 방송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플랫폼의 라이브러리를 채우고 구독자를 붙잡기 위해 만들어진다. 제작의 목적이 바뀌면 제작 방식이 바뀌고, 그 현장에 선 사람들의 일하는 조건도 바뀐다.

Key Takeaway

콘텐츠의 목적이 ‘시간을 채우는 것’에서 ‘라이브러리를 채우는 것’으로 바뀌었다. 제작의 목적이 바뀌면 제작 방식이 바뀌고, 그 현장에 선 실연자들의 일하는 조건도 함께 바뀐다.

Same Current, Different Speed

같은 흐름, 다른 속도

미국의 지표, 그리고 폭스의 로쿠 인수

이 변화는 한국만의 사정이 아니다. 닐슨의 ‘더 게이지’ 2026년 3월 자료에서 미국의 전체 TV 시청 중 스트리밍 비중은 47.6퍼센트로, 케이블(21.4퍼센트)과 지상파(20.3퍼센트)를 합친 것보다 크다. 단일 사업자 1위는 유튜브(13.2퍼센트), 그다음이 넷플릭스(8.2퍼센트)였다.

변화가 어디까지 왔는지는 이 글을 쓰는 사이에도 드러났다. 2026년 6월 15일 미국 지상파 방송 폭스(Fox)가 스트리밍 플랫폼 로쿠를 약 22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뉴스와 스포츠 생중계로 버텨 온 전통 방송사가 1억 가구의 스트리밍 플랫폼과 그 가입자 데이터를 사들인 것이다. 편성표를 쥐고 있던 쪽이 이제 편성표 바깥의 플랫폼과 시청자 관계를 사들이는 단계로 넘어갔다. 한국은 모바일과 통신 결합이 더 빠른 만큼 같은 방향으로 더 가파르게 가고 있다.

닐슨 더 게이지 2026년 3월 — 미국 전체 TV 시청 중 스트리밍 47.6%, 케이블 21.4%, 지상파 20.3% 비중을 보여주는 원형 차트
미국 전체 TV 시청에서 스트리밍 비중은 47.6%로 케이블·지상파 합계를 넘어섰다. 단일 사업자 1위는 유튜브(13.2%), 2위는 넷플릭스(8.2%).© Nielsen, The Gauge™
Rewriting the Grammar of Compensation

보상의 문법도 다시 쓰인다

SAG-AFTRA의 새 협약, 그리고 한국

시청이 편성표에서 스트리밍으로 옮겨 가자, 화면에 선 사람들이 보상받는 방식이 협상의 한복판으로 올라왔다. 미국 배우·방송인 노조 SAG-AFTRA는 2023년 118일간의 파업으로 스트리밍 재상영분배금(residual) 구조를 새로 짜 약 10억 달러 규모의 보상을 확보한 데 이어, 2026년 6월 4일에는 조합원 91퍼센트 찬성으로 4년짜리 새 단체협약을 비준했다. 협약은 임금과 스트리밍 재상영분배금, 복지를 개선하는 한편, 제작사가 AI로 만든 합성 배우를 쓰려면 실제 배우나 그 디지털 복제본보다 ‘상당한 추가 가치’를 입증하도록 못 박았다. 새 협약은 2026년 7월 1일부터 2030년까지 적용된다.

한국도 같은 상황이다. 회당 정액으로 지급되던 출연료는 OTT 오리지널에서 시청 시간과 해외 노출에 연동되는 새 산식으로 바뀌고 있고, 한쪽에서는 한껏 치솟던 주연 회당 출연료를 다시 낮추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방송 한 편이 편성표를 거치지 않고 전 세계 라이브러리에 오래 남는 시대에, ‘한 번 출연하고 어떻게, 얼마나 오래 보상받을 것인가’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The Crack Is Only the Beginning

균열은 시작에 불과하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가치를 가져갈 것인가

편성표의 붕괴는 단순한 시청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콘텐츠 산업 전반의 권력 구조와 보상 체계를 재편하는 신호다. 시간의 주도권이 시청자에게 넘어간 지금, 콘텐츠는 더 이상 특정 시간대를 채우는 상품이 아니라 플랫폼 안에서 끊임없이 소비되고 평가되는 자산이 되었다.
이 변화 속에서 제작 방식과 투자 구조, 그리고 실연자의 가치 산정 기준까지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결국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어떤 기준으로 가치를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산업 전체의 재설계다.

연재 ‘OTT가 바꾼 풍경’의 두 번째 이야기는 다음 호(VOL.95)에서 이어집니다.

참고자료
  1. 1Nielsen, The Gauge™ & Media Distributor Gauge, 2026년 3월 (Total Day, Persons 2+). https://www.nielsen.com/news-center/2026/ncaa-tournaments-spark-march-madness-for-paramount-and-warner-bros-discovery-in-nielsens-the-gauge/
  2. 2연합뉴스, ‘[샷!] 집에 TV도 없다’, 2026. 6. 11 — 경향신문 지면 편성표 폐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2025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 인용.
  3. 3경향신문, ‘6월 8일자 지면부터 TV 편성표 게재가 중단됩니다’, 2026. 6. 7. https://www.khan.co.kr/article/202606072127025
  4. 4Variety · Bloomberg · CBS News, 폭스의 로쿠 인수 발표 보도, 2026. 6. 15.
  5. 5SAG-AFTRA, AMPTP와 4년 단체협약(2026 TV/극장 협약) 비준(91.4% 찬성), 2026. 6. 4 — AI 합성 배우 제한·스트리밍 재상영분배금·복지 개선 (Fast Company/AP · Hollywood Reporter · Variety · Fortune).
  6. 6한국콘텐츠진흥원·업계 추산, 해외 OTT 예능 제작비 및 출연료 구조 변화 관련 보도(이슈인사이트 등).
유용한 단어
OTTOver-The-Top
별도의 방송망 없이 인터넷으로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넷플릭스·웨이브·티빙 등이 대표적이며, 편성표 대신 시청자가 직접 ‘언제, 어디서’를 고르는 구조 로 시청 권력을 옮겨 놓았다.
재상영분배금Residual
콘텐츠가 재방송·스트리밍 등으로 다시 활용될 때 출연한 실연자에게 추가로 지급되는 보상 . SAG-AFTRA가 스트리밍 시대에 맞춰 그 구조를 새로 짠 핵심 쟁점이다.
더 게이지The Gauge
닐슨이 매월 발표하는 미국 TV 시청 점유율 집계로, 지상파·케이블·스트리밍의 비중을 한눈에 보여준다 . 2026년 3월 스트리밍이 47.6%로 케이블·지상파 합계를 넘어섰다.
Writer
필자 한정훈

한정훈 Han Jung-hun

K-EnterTech Hub 대표 · 동국대 영상대학원 겸임교수

JTBC 등에서 미디어 전문 기자로 23년을 일했다. 현재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현장 취재를 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와 테크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오디언스를 불러오는 콘텐츠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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