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엔터테이너를 결합한 ‘스포테이너’라는 말은 이제 흔해졌다. 현역 시절 대중의 사랑을 받은 스포츠 스타들이 은퇴 후 방송가로 들어오는 건 이제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진다. 이렇게 된 데는 스포츠 스타들과 방송의 요구가 맞아떨어져서다. 스포츠 스타들은 젊은 나이에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은퇴 시기가 다른 직업군보다 빠르다. 그러니 은퇴 후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하는데 방송은 그들이 해 왔던 스포츠라는 영역과 유사한 지점들이 있다. 일단 대중들이 있고, 주목을 받으며, 확실한 퍼포먼스를 보이면 그 성과가 돌아온다는 점이 그렇다. 방송 역시 리얼리티 경향이 갈수록 강해지면서 ‘진정성’의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저 언변만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 나가 땀을 흘리는 생고생의 진정성. 거기에는 웃음과 더불어 땀과 눈물까지 가감 없이 보이는 세계가 펼쳐진다. 방송인은 아니지만 스포츠 현장에서 늘 ‘진짜’로 대중들을 감동시켜 온 스포츠 스타들은 이런 변화에 최적의 존재들이 됐다. 스포츠 스타들과 방송의 욕망이 겹치는 지점에서 스포테이너는 이제 하나의 직업군으로 자리한다.
씨름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말씨름도 잘하네
몸에 밴 기량이 방송에서 빛나는 이유
스포츠 스타들의 무엇이 방송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했을까. 과거 MBC 《무릎팍도사》를 이끌었던 강호동의 사례가 그 이유를 정확히 알려준다. 점집 같은 분위기에서 게스트를 초대해 그 사람의 인생을 낱낱이 파헤치는 이 토크쇼에서 강호동은 씨름 선수 시절의 순발력이 어떻게 예능에서도 통하는가를 절묘하게 보여 준 바 있다. 두 사람이 마주하고 상대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씨름 선수의 순발력은, 상대의 토크에 기막히게 반응하며 예상치 못한 질문을 찔러 넣는 토크쇼에서도 힘을 발휘한 것이다. 강호동의 토크쇼는 그래서 씨름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말씨름도 잘하더라는 호평을 들었다.
강호동의 사례처럼 운동선수 시절 몸에 밴 기량은 스포테이너들이 방송도 잘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강호동을 잇는 스포테이너 안정환의 경우, 그가 스트라이커로 뛰었던 방식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그대로 발현되었다. 늘 뛰어다니는 게 아니라 기회가 왔을 때 한 방을 제대로 날리는 토크나 코미디 방식이 그것이다. 또 커다란 덩치와 달리 빠른 순발력을 갖췄던 농구 스타 출신 서장훈도 그 덩치를 역이용하는 반전으로 자신만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세웠다. 깔끔함과 섬세함 같은 의외의 반전 모습이 그것이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반전이 효과를 낸다는 걸 경험해 온 스포츠인다운 모습이다.
이들은 스포츠 선수 출신 특유의 콤비 플레이에도 능하다. 강호동은 《1박 2일》 시절부터 이수근과 톰과 제리 콤비로 자신의 입지를 세웠다. ‘시베리안 야생 수컷 호랑이’라고 스스로를 부르며 모두를 압도하는 위압감을 보이지만, 깐족대는 이수근에게 번번이 당하고 무너지는 모습으로 웃음을 줬다. 안정환은 김성주와 축구 해설자와 캐스터로 활약하며 맞춘 콤비 플레이를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도 그대로 보여 줬다. 김성주가 토크를 드리블해서 센터링을 올려 주면 안정환이 웃음의 골을 터트리는 방식이다. 서장훈 역시 이수근, 안정환, 김구라 등 다양한 인물들과 콤비 플레이를 통해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만들어 냈다.

방송가가 요구하는 리얼 예능의 인재들
리얼과 여풍, 그리고 진심
강호동에서 안정환, 서장훈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스포테이너들의 활약은 갈수록 리얼을 요구하는 방송가의 트렌드 변화와 맞아떨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대본이 아닌 리얼 리액션을 보여 주는 방송들 속에서 스포테이너들은 급부상했다. 이른바 ‘각본 없는 드라마’를 경기장에서 써 왔던 그들에게 같은 걸 요구하는 방송가의 판이 제시된 것이다.
또한 최근 스포츠 예능에 불기 시작한 여풍(女風)으로 여성 스포테이너들도 대거 등장했다. 골프 여제 박세리는 《노는 언니》 같은 여성 스포츠 스타들이 주역인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리치 언니’로 떠올랐고, 그 그늘 아래서 피겨 스케이팅 곽민정, 수영 정유인, 배구 한유미 같은 여성 스포테이너들이 탄생했다. 이들은 스포츠 선수로 뛰면서 갖지 못했던 여유를 이제나마 누리는 모습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편 ‘식빵 언니’로 선수 시절부터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김연경은 은퇴 후 《신인감독 김연경》으로 웃음과 더불어 배구에 대한 남다른 진정성을 보여 주는 스포테이너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아예 예능적 재미보다 스포츠 자체에 집중하는 스포츠 예능이 대세를 이루게 됐다. 스포츠 예능이라고 해도 과거처럼 예능적 끼나 웃음을 줄 수 있는 기량을 요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최강야구》의 김성근 감독이나 《슈팅스타》의 최용수 감독처럼 웃음 그 자체보다 스포츠에 진심인 모습과 개성적인 캐릭터가 더 중요해졌다. 또한 스포츠 분야도 축구나 야구, 농구 같은 국가 스포츠에서 벗어나 조기 축구, 풋살, 달리기, 헬스 같은 생활 스포츠 영역으로 확장됐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스포츠인들이 대거 스포테이너로 합류하게 된 이유다. 특히 누구에게나 열린 유튜브가 예능 트렌드를 이끌면서 보디빌딩부터 크로스핏, 이종 격투기, 레슬링, 스턴트, 유튜버 등등 다양한 인물군들이 스포테이너로 떠올랐다. 《피지컬:100》은 이들을 한데 모아 풀어 낸 서바이벌 예능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각본 없는 드라마’를 경기장에서 써온 이들에게,
방송은 같은 진정성을 요구하는 판을 열었다.
리얼이 곧 경쟁력이 된 시대다
누구나 스포테이너가 될 수 있는 시대
진정성이 만든 새로운 스타상
이른바 ‘몸의 언어의 마술사’스포테이너라는 새로운 ‘직업군’의 탄생이 말해 주는 건 지금의 방송 환경이 얼마나 ‘진정성’을 요구하는가 하는 것이다. 리얼의 시대에 대중들이 방송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그것이 진짜냐 가짜냐의 여부다. 진짜 땀과 눈물을 담는 진정성이 아니면 통하지 않는 시대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러한 땀의 진정성은 최근 들어 수많은 정보들이 혼재된 뉴미디어 생태계 속에서 갈수록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선수 시절 초인 같은 아우라를 가졌던 영웅들이 스포테이너가 되어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며 해체되는 과정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현재의 미디어를 접하는 대중들의 정서와 맞물려 있다. 이제 대중들은 신비화된 스타들을 숭배하기보다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은 그들의 일상을 공감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신비화된 영웅이 친근한 이웃의 자리로 내려오는 스포테이너는 바로 지금의 대중들이 원하는 스타상의 전형이 된다.
흥미로운 건 연예인들과 달리 스포테이너들이 하는 직설어법은 대중들에게 반감이 덜하다는 점이다. 안정환의 퉁명스러운 농담이나 서장훈의 독설, 김연경의 거친 호통에 대중들이 관대한 건 그들이 스포츠인으로서 쌓아 온 피와 땀의 진정성이 쌓여 있어서다. 방송으로서는 스포테이너들의 이런 지점이 강력한 한 방이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스포테이너는 무한 경쟁에 놓인 성과주의 시대에 던지는 위로가 적지 않다. 《노는 언니》의 박세리처럼 늘 승리에만 집착해야 했던 운동선수들이 이제는 잠시 내려놓고 여유를 즐기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도 작은 위로를 전한다. 치열한 경쟁의 세계를 관통해 온 자들의 느슨한 삶의 태도가 보여 주는 역설이다.
이제 스포츠 스타는 축구나 야구 같은 프로스포츠의 영역을 벗어나 유튜브 등을 통한 생활 스포츠의 영역에서도 탄생한다. 그만큼 스포테이너에 대한 장벽이 사라진 것이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스포테이너가 될 수 있는 시대. 말만큼 몸을 쓰는 일과, 진짜를 보여 주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정덕현 Jung Deok-hyun
대중문화평론가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각종 방송 활동과 강연 등을 통해 대중문화가 가진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알리고 있다.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저서로 《드라마 속 대사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팔 때가 있다》,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