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2006년부터 드라마 스크립터로 일하고 있는 차미란입니다. KBS <사랑과 전쟁> 시즌1을 시작으로 <일말의 순정>, <기황후>, <하이스쿨 러브 온>, <밤을 걷는 선비>, <청춘시대1,2>, <우리 사랑했을까>, <날아올라라 나비>, <보라 데보라>, <체크인 한양>, <끝내주는 해결사> 등 다양한 드라마에 참여하였습니다. 지금은 다음 작품 준비 중입니다.
직업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스크립터라고 하면 대부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드라마 촬영장의 ‘서기’ 같은 역할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요, 스크립터는 드라마 제작 시작단계부터 참여해 대본회의를 토대로 타임테이블 정리, 콘티작업을 합니다.
촬영 현장에서는 여러 여건 상 대본 순서대로 찍지 않기 때문에 대본내용과 촬영내용이 맞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기록하죠. 배우들의 연결 의상, 분장 상태 같은 것들도 담당 파트가 따로 있지만 혹시나 놓치는 부분이 생기기 않도록 항상 더블체크 합니다. 촬영 종료 후에는 편집실에서 감독님과 함께 영상을 확인하며 감정 연결은 잘 됐는지, 빠진 부분은 없는지 등을 확인합니다. 한마디로 스크립터는 연출 감독님의 또 다른 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엔 일주일에 6일을 촬영하고 하루정도 쉬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당시엔 대본이 늦어지면 그때가 쉬는 날이 되는 거라 체력적으로 힘들 때면 “대본아... 늦게 나와라” 하는 생각도 많이 하고(웃음), 다음 촬영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이 좀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리고 잠을 못자기 때문에 현장에서 깨어 있는 스태프가 거의 없었어요. 연출감독님, 촬영감독님, 붐맨, 스크립터 그리고 배우. 딱 이렇게만 눈 뜨고 있는 경우가 많았죠. 한 번은 촬영을 하는데 카메라 앵글이 점점 땅으로 내려가는 거예요. 놀라서 봤더니 촬영감독님께서 깜빡 조느라 카메라가 바닥을 향한 거였어요. 지금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너무 피곤하고 피곤하고 피곤했던 기억입니다.(웃음)
청춘물을 여러 편 작업하면서 신인배우들을 많이 만났어요. 시간이 흘러 다른 현장에서 그때 함께 했던 배우를 만나면 먼저 아는 척을 해주는 때가 많습니다. 워낙 시간이 흘러서 저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해주면 행복하더라구요. 올해 초에는 <Mr.플랑크톤> B팀으로 현장에 갔는데 김민석 배우가 저를 보고 반갑게 맞아줘서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스태프들 중에서 막내였던 친구가 어느새 많이 성장한 모습을 보면 ‘시간이 빠르구나’ 싶으면서도 ‘대견하다 잘 견디고 있었네’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정말 많이 느끼고 있는 부분이에요. 작년 가을에 준비하던 작품이 있었는데 제작이 무산됐거든요. 그리고 함께 일했던 스태프들 중 아예 직업을 바꿨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다른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요, 다른 쪽에 경력이 없으니 일을 구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서른 초반에 잠시 이 일을 그만 두고 서비스직에서 일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결국은 다시 돌아왔죠. 사실 촬영 현장에선 잠도 많이 못자고 힘들지만 결과물이 명확하게 나오고, 엔딩 크레딧에 제 이름이 올라가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작품 하나를 위해 모두 한 마음으로 땀 흘리며 일했던... 그 짜릿한 순간들이 그리웠나 봅니다. 나이를 떠나 각자의 파트에서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모습이 아직도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가 된 것 같아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일이 너무 재밌고 ‘내가 지금 살아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게끔 하는 아주 희한한 매력이 있달까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 수 있는 이 직업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드라마 시장이 불황임에도 이 일을 놓을 수 없는 건 유일하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가장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저는 여전히 드라마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앞에 나서서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 무언가에 가려져 잊혀져있던 사건들. 그 예민하고 은밀한 것들을
드라마를 통해 이야기 하고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제가 맡은 일은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제가 잘 할 수 있는 이 일을 통해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올해도 잘
견디고, 잘 해낸 우리 모두가 다가오는 2025년에는 좀 더 많이 웃고, 좀 더 많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