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주말드라마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의 오천수로, 4월 막을 올리는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의 동욱으로, 개봉을 앞둔 영화 ‘울지 않는 아이’의 주연배우 정민으로 그리고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하는 남편이자 아빠로,
일정으로 빈틈없이 빼곡히 채워진 ‘그의 대본’ 속에, 인터뷰라는 장면을 조용히 추가했다.
KoBPRA WEBZINE Vol.90 글.
박세나
사진.
김성헌
여섯 번째 장편 드라마,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
첫 화부터 높은 시청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번 드라마의 주요 메시지와 오천수의 극 중
역할은 무엇인가요.
처음엔 그냥 형제들 간의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옛말에 ‘사람이 잘 들어와야 집안이
선다.’라고 하잖아요.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표현이 자주 떠오르더라고요. 새로운
가족으로 한 집안이 다시 회복되는 이야기에요. 극 중에서 형수 ‘광숙(엄지원 분)’이 바로
그런 존재죠. 독수리술도가 형제들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죽은 첫째 형을 대신해
무너져가는 ‘독수리술도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형제들을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죠.
저는 독수리술도가 5형제 중 둘째인 기러기 아빠 오천수 역을 맡았고요. 미국으로 아내와 딸을
보내놓고 둘만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결국 이혼의 아픔을 겪어내는 인물이에요. 나머지
형제들도 모두 각자의 아픔이 있죠. 그런 네 형제들의 상처를 형수 ‘광숙’이 사랑과 포용으로
끌어안아요. 그래서 형수가 진짜 독수리가 되어 첫째 형의 자리를 채움으로써 새로운 의미의
독수리 5형제로 다시 완성되는 것 같아요.
오천수의 강도 높은 감정신이 많은 것 같아요. 극의 초반이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이혼 통보를 받은 천수가 형수와 통화하면서 그동안 담아왔던 서러움과 형에 대한 그리움으로
오열하는 장면이에요. 아내와 싸우고, 딸에게 미안해하죠. 동생들에게도 형수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고독하게 품고 있죠. 그런데 형수 광숙이 이런 말을 건네요.
“형한테 하고 싶은 말 나한테 다 해요.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고, 형 없으면 형수가 대신이지
뭐,
참으면 병 되니까, 그동안 속상한 거, 억울한 거, 나한테 다 쏟아내요.
밤새도록 내가 다 들어 줄게요.”
형수의 위로가 천수를 울게 한 것 같아요. 아내와 다투는 장면부터 이 장면까지 일주일 동안
촬영했는데 저에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잊을 수가 없어요. 촬영 중에도 또 촬영을 마친
후에도 계속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애써 다른 생각을 해도 운전을 해도 눈물이 막 쏟아졌어요.
설상가상 개인적으로도 조금 속상한 일이 생겼어요. 배역과 현실의 감정이 막 뒤섞이니까 더
힘든 거예요. 안 되겠다 싶어서 보고 싶은 감독님에게 전화했어요. 몇 해 전 <소년비행>이라는
영화를 찍은 조용익 감독님이랑 같이 작업하는 분들과 만났어요. 다들 저보다 어린데, 참
순수한 분들이에요. 그래서 이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날도 그렇게 진하게
만나서 밤이 깊도록 울고 웃으며 얘길 나눴어요. 사실 집에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일어나니까 꽤 많이 회복되어 있더라고요. (웃음)
어느 배우보다 장편의 특징이나 매력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것 같아요.
2013년 <왕가네 식구들>이 첫 장편이었으니까 이번이 벌써 여섯 번째 작품이네요. 장편
드라마만의 특징이라면 극의 흐름이 아닐까 해요. 장편은 기본적으로 등장인물도 많고
이야기도 복잡하게 얽혀있죠. 그래서 본격적인 이야기 라인이 풀어내기 전 극의 초반에
돌아가면서 인물 소개를 하는 구간이 있어요. 경험이 많다 보니 처음 시작할 때 그 부분을 잘
찾고 준비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첫째 형 이야기가 한참 흐르다가 둘째 오천수로
넘어오는 타이밍이 있어요. 그때는 오천수가 등장하는 장면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의 대화에도
오천수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해요. 모든 배우가 그렇겠지만, 자신이 맡은 인물 이야기가
집중될 때 더 힘을 집중하게 돼요.
장편 드라마의 매력은 아무래도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 진행되니까 현장에서 배우나
스태프와 자주 만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이장우 배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녹진’
해진다? (웃음) 그리고 이 부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직장인으로 비유하면 ‘아,
올해도 연봉이 올랐구나.’ 생각해요. 아무래도 고등학생 두 자녀를 둔 아빠라서 든 생각일
수도 있지만, 가족들을 지킬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연기에 녹아든
‘최대철’이라는 장르
매 작품마다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연기에 대한 칭찬이 많아요.
그렇게 평가해 주신 부분은 너무 감사하죠. 저는 평소에 ‘최대철이라는 삶’을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감독도 극본도 출연도 모두 저예요. 그래서 제가 출연한 드라마뿐만 아니라 제 삶
전부가 저는 하나의 무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스스로 ‘진정성’에 대해 많은 질문은 던진 것
같아요. 일상과 연기가 일치하지 않으면 가식이 되는 거니까, 작품 속 연기든 제 인생의
연기든 모두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려고 하죠. 그런 생각들이 많이 녹아든 게 아닌가
해요.
예상치 못한 사고로 무용을 포기했을 때, 막막한 터널에서 나올 해답지를 많이 갖고 있지 않은
20대였죠.
그런데 보란 듯이 뮤지컬 배우가 돼서 무대를 다시 오르셨어요.
제대 후 한국에서 열린 ‘파리국제콩쿠르’ 예선을 1위로 통과하고 얼마 후 손 인대 3개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입었어요. 당연히 본선은 꼴찌를 했죠. 원망스러웠죠. 가뜩이나 군 면제
받은 선배들과 비교하면 8년 정도 뒤처져 있는데 부상까지 겹치니 ‘아, 노력해도 안
되는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주변의 만류에도 내려놨어요. 물론 내려놓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죠. 그래도 진짜 제가 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그렇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누워있는데 입시 때 연극영화과도 꿈꿨던 기억이
났어요. 그래서 춤과 연기를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니, 뮤지컬이더라고요. 용기를
가지고 오디션을 봤고 그렇게 시작된 첫 작품이 <와이키키 브라더스>였어요.
딸이 선화예고를 다니는데요. 집에서 꽤 거리가 있어서 얼마 전 제가 데려다준 적이 있었어요.
선화예고가 유니버셜아트센터와 같은 부지에 있는데, 그곳이 예전에는 리틀엔젤스회관으로
불렸어요. 20여 년 전 ‘파리국제콩쿠르’가 열렸던 곳이에요. 오랫만에 그곳을 지나가는데 그때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지금은 ‘주말드라마 시청률 요정’이라는 애칭도 있지만 드라마 데뷔도 극적이셨다고요.
뮤지컬, 연극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만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게 쉽지 않아서, 아내가 대형
아울렛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어요. 연기도 하고 아내 일을 같이 도우면서도 맘속으론 이제
연기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 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어느 날 알고 지내던 감독님이
드라마 오디션이 있으니까 한번 가보라고 연락이 왔어요. 해도 안 될 테니 안 할래요 하고
얘길하고 있는데 아내가 괜찮으니, 오디션을 보고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거 다 정해져 있는
거니까 안 해도 된다고 해도, 연기 포기하지 말라고 다녀오라고 해서 그렇게 가게 되었죠.
참 아이러니하게 그렇게 붙잡고 싶었던 연기인데 마음 다 비우고 잘 보이려고 꾸밀 생각도
안하고 일하던 그대로 꼬질꼬질하게 하고 간거죠. 오디션 장에 들어서는 문영남 작가님이 픽
웃으시더니 “찌질이를 뽑아야 하는데 진짜 찌질이가 왔네”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 첫 장편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로 다시 연기를 이어갈 수 있었어요.
때론 깜깜한 터널을 지나가는 듯하지만, 멈추지 않고 결국 길을 찾으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여정엔 늘 길을 안내하는 빛도 함께 있네요.
그러게요. 위기 때마다 이끌어주는 고마운 존재들을 만나요. 바로 지금의 아내도 그래요. 저는
아내를 만나 다시 태어난 복 받은 사람이죠. 한번은 아내에게 진심으로 사과한 적이 있어요.
철없던 시절 너무 미안한 행동을 많이 해서 뭐가 미안한지 말도 못 할 정도였죠. 하지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앞으로는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만 하겠다고 맹세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사실은 그동안 알고도 모른 척한거라고요. 힘들었지만 제가 어렸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데요. 어린 나이에 자식을 둘이나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었는데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겠느냐며. 하지만 언젠가 돌아올 거라 믿었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람 최대철과 배우 최대철의 목표와 방향이 단순해지고 명확해지더라고요
연기자의 삶에서도 한 분 계세요. 바로 <왕가네 식구들>의 문영남 작가님이에요. <왕가네
식구들> 찌질이 왕돈 역으로 제 삶이 바뀌었으니까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데, 문영남
작가님이 왕돈 역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 갑순이>이라는 작품에서 중년 사업가 배역을
주셨어요. 보통은 찌질이, 코믹, 악역 등 소위 특화된 부분의 배역으로 한번 각인되면 유사한
역으로 캐스팅하시거든요. 그런데 찌질이 왕돈과 전혀 다른 분야의 인물을 주신거죠. 너무 큰
선물이었죠. 왜냐하면 그렇게 스펙타클하게 다른 역할로 살 수 있다는 기회를 주신다는 게
쉽진 않거든요. 그때 느낀 감사함은 아마 배우만이 느끼는 선물 같은 감정일거에요.
최근에도 배우 조성하 형님께 고마운 일이 있었어요. tvN ‘잘생긴 트롯’에 출연했는데, 친분이
있는 연예인을 객석에 초대하자는 요청이 있어서 고민하다가 조성하 형님께 부탁드렸어요.
그날 녹화가 오후 1시부터 자정 넘어까지 이어졌는데, 저는 1부 끝나고 당연히 귀가하셨을
거로 생각했죠. 그런데 자리를 뜨지 않으시고 녹화 끝까지 객석을 지켜주셨어요. 너무 놀랐고
감사했어요. 형님이 객석에 앉아 있는데 무대 위의 제가 너무 외로워 보이셨데요. 소속사도
매니저도 없이 혼자도 활동하니까, 아끼는 동생이라 가진 재능 더 잘 보였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하시면 예전에 형님 자신을 보는 것 같으셨데요. 내색은 못 하지만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을요. 정말 눈물 나게 감사했어요.
살아가는 방법에서
사명을 보기까지
배우님에게 ‘연기자로 사는 삶’이란.
저는 사실 스스로 한없이 부족하고 여린 성격이라서 어느 자리에서건 제 의사를 먼저
표시하기보다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었어요.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도 그냥 제가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의 연기와 무대 그리고 노래를 통해 울고
웃으며, 희망을 품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으며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풍부한 감성, 춤,
노래와 연기를 할 수 있고 배우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던 게 생존 수단만이 아닌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구나 생각했죠. 그렇게 생각하니 좀 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서 더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문영남 작가님이 2013년 <왕가네 식구들> 캐스팅 당시 배우님을 보고 ‘끈기와 절박함’이
느껴진다고 하셨어요.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은 책임감과 적극적인 마인드로 채워져 있지 않을까 해요. 가장으로서도 그리고
연기자로서도 점점 더 큰 책임을 느껴요. 소속사 없이 활동하다 보니 저를 알리는 일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것 같고, 연락해 주신 분들께도 늘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요.
저도 때론 쉬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그래요.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요. 그런데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아내와 자주 해요. 그래서 지금은 많은 작품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불러주시는 분들께 너무 감사하죠. 프리랜서라는 직업을 가진 세상 모든 분이
공감하시겠지만 ‘자유’만큼 ‘불안’도 안고 가는 거잖아요. 요즘 촬영 현장이나 방송국에서
관계자분들 만나면 “일오팔팔 대철대철”하고 웃으면서 인사해요. 나름 제가 밀고 있어요.
(웃음) 당장은 아니겠지만 언젠가 기억날 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믿기 힘드시겠지만 이런
저도 예전에는 내성적인 편이었어요. 그런데 ‘사는 게 이런거지 뭐, 가족들 지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면서 이렇게 사는거지’하고 생각하니 성격도 바뀌더라고요. (웃음)
의미 있게 간직하고 있는 말이 있으세요?
‘타인’, ‘내려놓는 마음’ 그리고 ‘사랑’이요.
언젠가 지인이 제가 너무 남을 배려하는 성향이라며 그러면 칭찬보다는 무시를 당할 수 있다는
애정어린 충고를 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아무리 바꾸려고
해도 저는 그냥 상대를 배려하는 쪽이 편한 사람이더라구요. ‘타인’도 나만큼 중요한
존재잖아요. ‘내려놓는’은 애써 살다 보니 든 생각이에요.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해도,
결과는 내려놓고 맡겨야 하는 것 같더라고요. 억지로 한다고 안 되는 일이 되는 경우는
없잖아요. 그런 마음을 가지니까 저도 앞으로의 제 삶이 궁금해져요. 집착도 없어지고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사랑’은 몇 해 전, ‘뜨거운 씽어즈’에서 12명의
배우가 조용필 선생님의 ‘바람의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어요. 그 노래 가사를 보면 이런
부분이 있거든요.
보다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수 없다는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노래를 부르면서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절대
불가능하다 생각했죠. 나를 죽도록 힘들게 한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요. 강한 부정을 했죠.
그런데 삶이 참 아이러니하게 삶을 살아낼수록 그게 맞는 말 같더라고요. 정말 어렵고
힘들지만 노래가사 처럼요. 사랑이 답인 것 같더라고요.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일은
나약한 인간이 감당하기엔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사랑하고 있는 존재가 내 세상의 ‘모든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나의
우주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